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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 디자인위너미술학원, 애니위너만화학원
만화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만화의 역사1 자유로운 과장법과 생략법을 써서 단순·경묘(輕妙) 그리고 암시적인 특징을 노리는 것이 순수회화와 구별되는 점이다. 회화 또는 풍자화를 캐리커처(caricature)라고 하는데, 이는 이탈리아어의 caricare(과장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 현재는 영국·프랑스 등 극히 일부 유럽지역에서 시사만화를 가리켜 쓰는 말이며, 일반적으로는 과장된 인물화를 캐리커처라 한다. 그리고 시사만화나 한 장면만화는 카툰(cartoon)이라고 하며, 4컷 이상이 연결되어 스토리가 이루어지는 만화는 코믹스(comics) 또는 코믹 스트립스(comic strips)라고 하는데 이것은 주로 미국에서 쓰는 말이며, 유럽에서는 보통 카툰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중국 등지에서는 만화라고 하며, 소설처럼 긴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만화는 극화(劇畵)라고도 한다. 1. 기원 만화와 회화를 내용성 ·표현양식 등으로 구별하는데 어느 방법을 막론하고 만화와 회화의 역사적 기원은 동일시된다. 제4성층 후기 지구 전체가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을 때, 인간은 이미 동굴 속에서 벽화를 그렸고, 사슴의 뼈나 뿔에다 칼로 조각하였다. 석기시대를 거쳐 이집트의 신문화시대로 들어서면서, 초기 피라미드 내부와 후기 룩소르신전 등에 그려진 새와 동물들의 의인화된 그림들은 다분히 만화의 기본요소인 희화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 후 유럽의 르네상스문화의 개화에 따라 희화적인 작품이 많은 목판화나 동판화로 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독일의 A.뒤러가 ‘죽음과 악마’를 소재로 하여 그린 작품이나 보슈의 환상적인 유화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요괴들과 악마들은 만화의 기본요소인 과장법으로 그려진 것들이다. 바로크시대 고야의 《로스 카프리치오스》 등 악마적인 동판화 시리즈는 희화성이 강한 회화라기보다는 회화적인 만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18세기 말경의 순수문화시대에 들어서면서는 개인사상의 존중과 자유, 독창성이 강한 표현양식이 빛을 보기 시작하자 회화 역시 다양성을 띠기 시작했고 19세기의 인쇄술 발달로 현대만화로 발전되었다. 2. 분류 만화는 내용과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시사만화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시사에 맞는 그때그때의 상황을 풍자한 만화이다. 유머만화는 가정물 ·아동물 ·동물만화 등 시사성을 초월하며 예술성을 지향하는 만화이다. 극화는 소설처럼 긴 스토리를 한 장면 한 장면 순서대로 변화시켜 엮어나가는 만화이다. 표현은 유머만화적일 수도 있고, 사실적인 삽화적일 수도 있고 비현실적 ·초과학적인 과장법을 쓸 경우도 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단편만화이다. 월트 디즈니프로덕션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3. 역사 현대회화의 시발점을 19세기 후반으로 본다면 현대만화의 시발점도 이와 거의 같은 때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 당시에는 만화를 화가의 여기(餘技)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프랑스 사실주의의 대가이며, 회화사에 길이 남을 《크리스팽과 스카팽》 《삼등열차》 등의 명작을 남긴 오노레 도미에는 신문에 당시 국회의원들이 의회에서 한 발언장면, 법원에서의 재판광경 등을 만화로 그렸을 뿐 아니라, 당시의 프랑스왕 루이 필립을 서양배(꼭지쪽은 가늘고 밑쪽이 넓은) 모양으로 그려서 신문에 실어, 6개월 간의 금고형을 받는 필화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데생의 천재로 알려졌던 H.T.로트레크의 유화작품은 인상파미술관 속의 커다란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가이나 역시 신문에 많은 만화를 그렸다. 한국의 경우, 1930년대에 동양화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이 잡지에 단편만화를 그렸고, 노수현(盧壽鉉)은 1924년대에 《조선일보》에 《멍텅구리》를 연재함으로써 신문만화의 새 기원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순수회화작품으로 만화를 앞지르는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대체로 만화가의 작품(본격 만화작품)으로 알려지기보다는 화가의 여기작품으로 알려졌다. 4. 한국 최초의 순수한 만화가는 김규택(金奎澤)이다. 그는 《신동아(新東亞)》 《별건곤(別乾坤)》 《조광(朝光)》지 등에 많은 단편만화와 만화 ·만문형식의 《억지춘향전》을 연재하여 세인의 눈을 끌었고 8 ·15광복 후에는 주간지 《새한민보》 표지에 시사만화를 연재하였다. 신문만화로는 1924년대에 노수현이 《조선일보》에 《멍텅구리》를 연재하였고 광복 후엔 김중현(金重鉉)이 때때로 잡지에 만화를 그리곤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어린이잡지 등에 소설삽화를 그리던 김용환(金龍煥) ·김의환(金義煥) 형제가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김용환은 《서울타임즈》에 《코주부》를, 김의환은 《어린이 나라》 등 어린이잡지에 많은 만화를 그렸다. 또 시인 김소운(金素雲)이 《만화행진》이라는 주간 만화신문을 발행하여 종래 만화란 어린이 전용의 것으로 여겨왔던 일반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곧 폐간되었고 김용환이 《만화뉴스》를 발간했는데 《연합신문》에 만화를 기고하던 김성환(金星煥)과 신동헌(申東憲)이 이에 참여하던 중 6 ·25전쟁이 일어났다. 피난지에서 박성환(朴聖煥)이 《만화신보》, 김용환이 《만화신문》, 김성환이 《만화승리》를 제작하는 등 주간 만화신문이 잠시 활기를 띠었다. 환도 후엔 김성환이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고바우영감》을 연재하고(80년도에 조선일보로 옮겨 연재하다 현재는 文化日報에 연재중), 곧 이어 안의섭(安義燮)이 《경향신문》에 《두꺼비》를 연재했다가, 《문화일보》에 연재했으며 정운경(鄭雲耕)의 《왈순아지매》가 《대한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며 백인수(白寅洙)의 《사회희평》이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것이 신문만화로선 장기간의 연재물이다. 신문 ·잡지엔 김일소(金一笑) ·김경언(金庚彦) ·길창덕(吉昌悳) ·박기정(朴基禎) ·임창(林創)이 그려온 한편, 오룡(吳龍)이 《조선일보》에 《야로씨》를, 윤영옥(尹暎玉)이 《서울신문》에 《까투리여사》를 연재했다. 환도 후의 아동만화계에는 만화잡지가 붐을 일으켜 이상호(李相昊) ·정한기(鄭漢基) ·박기준(朴基埈) ·김정파(金靜波) ·신동우(申東雨) ·김종래(金鍾來) ·박현석(朴賢錫) 등이 활약했으나, 얼마 후엔 잡지시대에서 대본소용 단행본시대로 접어들어 많은 조제품이 남발되어 사회문제화되기도 하였다. 또한 《소년세계》 《새벗》 《학원》 《학생계》 등에는 안의섭의 《두꺼비 A ·B곡》, 김성환의 《꺼꾸리군 ·장다리군》 《세모돌이 ·네모돌이》 《소케트군》 등이 연재되었다. 또 신동헌은 최초로 장편만화 《홍길동》을 제작상영함으로써 만화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호피와 차돌바위》로 이어졌으나 기업으로까지 성장하지는 못했다. -고우영(高羽榮)《임꺽정》- 김종래의 극화 《도망자》 《암행어사》에 이어 고우영(高羽榮)은 극화 스타일로 꾸준히 《일간스포츠》지에 《임꺽정》 《일지매(一枝梅)》를 연재했고, 이두호의 《머털도사와 또매》 《장독대》,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 등은 무술극화를 정착시켰고, 박수동(朴水東)은 독특한 선으로 《고인돌》을 《선데이서울》 등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엄마찾아 3만리》의 김종래, 《라이파이》의 김산호의 단행본 시대를 거쳐서 각 일간지들은 어린이와 중학생 상대로 《소년조선일보》 《소년동아일보》 《소년한국일보》를 발행했는데 김박(金博) ·김세환(金世煥) ·김삼(金森) 등이 참여하였다. 《동아일보》에 이홍우(李泓雨)가 《나대로선생》을, 《일간스포츠》에 허어(許漁)가 《미스터 펀치》를 연재하였다. 어린이잡지에서는 김수정이 《아기공룡 둘리》로 명성을 얻었고 주간만화잡지와 스포츠신문에서는 이현세의 《까치》 시리즈와 《로보트 태권 V》의 김형배, 《변금련》의 배금택, 《악동이》의 이희재와 《각시탈》의 허영만, 《신손자병법》의 한희작,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가 유명하다. 단체로는 1958년 김용환 ·신동헌이 주도한 한국만화가협회와 김성환 ·안의섭이 주도한 현대만화가협회가 각각 만화가협회전과 문화단체와의 야구경기 등 행사를 많이 해왔으나, 5 ·16쿠데타 후에 와해되었고, 68년 아동만화가협회가 이상호를 회장으로 발족된 후, 77년 극화분야와 어린이신문 관계 만화가까지 망라하여 만화가협회로 개칭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겨레신문》이 발행되면서 박재동의 《한겨레그림판》과 《경향신문》의 김상택의 《시사 희평》이 유명하고 《한국일보》의 심민섭의 《심마니》도 유명하다. 만화의 분류별 역사 만화는 여기저기 보급되어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한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제 9의 예술이라는 만화의 또 다른 명칭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만화는 저급한 성질의 아이들만 보는 것으로 아니면 싸구려 환상을 담은 오락물 정도로 가볍게 보아 넘겨져 왔을 뿐이다. 그러나 만화의 역사는 인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역사적 고찰로써 대중적 포용력과 상업성 그리고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그 발전가능성에 비추어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화의 역사 (1)정치 만화 일반적으로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드를 서구 역사상 최초의 만화가로서 간주하고 있다. 호가드는 이탈리아인들이 소개한 개인적인 차원의 캐리커쳐를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유머를 그렸다. 그는 최초의 정치만화가인 동시에 그의 서술적 만화이야기는 현대 연재만화의 전조가 되었다. 그 외에도 토마스 로우랜드슨과 고야는 정치적 설득을 가진 만화양식을 보급하는 데 기여했으며 프랑스의 오노레 도미에는 만화를 미술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는데 투옥까지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의 사회적 악습에 대한 일반적인 풍자와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넓은 견지에서 보면 정치만화에 대한 체제와 힘은 도미에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식민지시대의 미국에서는 많은 반영 만화들이 익명의 작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그 중 한 사람이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종종 미국 최초의 정치만화가로 논의되고 있다. 미국 저널리즘 초창기에는 정치 만화가들이 크레용의 딱딱한 용모와 음침한 주색을 통한 표현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토마스 내스트이다. 토마스 내스트와 그의 삽화. 대도시에서 대형 신문들이 등장함에 따라 정치만화는 두 가지 양식으로 나누어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는 일간신문을 통한 시사만화로 그것은 복잡한 신문 신디케이트로 발전되었고 또 하나는 소규모의 잡지를 통한 표현이었다. 신문만화가에는 죤 넥커친, 로린 커버, 재이 딩 다링, 넬슨 하딩, 다니엘 피츠패트릭 등이 있었고 그들은 각기자신들의 시사만화로 한 개 또는 그 이상의 플리쳐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졌다. 정치잡지에서 일하는 시사만화가들은 신문에서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독자를 가졌으나 그들이 선보인 논점과 표현법은 후세의 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아트 영, 보드맨 루빈슨, 죤 슬론, 로버트 마이너 등은 크레용과 육중하고 딱딱한 용모의 사용, 도미에의 표현법 등을 사용했다. 2차 대전을 지나 197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의 정치 만화가들이 등장하였는데 패트 오리판트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때의 만화가들은 로널드 셜즈와 같은 현대 삽화가의 영향을 받아 소묘적이고 가는 선을 사용한 캐리커쳐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날이 넓은 도끼적인 공격보다는 가늘고 긴 쌍칼적인 재치를 통해서 자신들의 세상에 접근하고 있다. 유머에 대한 이러한 경향은 짐 베리의 한 칸 만평인 베리의 세계에서 두드러져 유머 만화가 신문의 사설면에 실릴 수 있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 미국의 급진적인 만화가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산 베트남 전쟁은 지하신문과 지하 연재만화에서 더욱 드러났다. 1980년대 이후의 정치만화는 사회의 여러 가지 경향들 이를테면 독자의 보다 강화된 시각적인 세련성, 더 많은 오락에 대한 요구 그리고 정치적 집단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을 반영하고 있다. 즉 유머에 대한 요구, 시사면에 대한 구독률을 높혀줄 시각적 구성에 대한 요구는 신문만화가의 새로운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현대의 신문만화는 정보를 알려 주고 설득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끌어 들어야만 한다. (2)유머 만화 1840년대의 카툰이란 영어단어의 의미는 이탈리아어인 키르톤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대형미술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행해지는 기초적인 스케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의 만화는 정치적 논평과 유머적 성격 모두를 동시에 가졌다. 유머스러운 만화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논평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인간존재에 대한 완전하고 현세적인 세계를 떠맡게 된 것은 1860년대에 들어섰을 때이다. 유머 만화는 삽화적인 표현법을 사용하였고 그 표제는 짧고 여러 줄로 구성된 연극 대사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상황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1920년대에 와서 만화의 표제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종종 유머만화는 여전히 두 줄의 농담 대사로 구성된 삽화형식을 취했다. 그 이후 만화의 표현기법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더 다양하게 변모하였다. 1930년대의 만화가로는 제임스 터버와 찰스 아담스를 들 수 있다. 이들 만화가들은 각기 그들의 기법을 추종하는 많은 모방자를 낳았고 만화 유머의 새로운 길을 전개시켰다.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혀 설명을 붙이지 않은 상태로도 만화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대 유머만화는 미술 표현법을 통해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들의 현대 유머 감각을 가장 적절한 시각적 표현으로 구성 짓는 것이다. (3)이야기 만화 정치만화와 유머만화 이후에 등장한 만화분야는 연재만화이다. 그것은 현재 뚜렷한 확장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연재만화가 처음 출현했을 때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중요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연재만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것은 미술의 영역으로부터 즉각적인 환영을 받지 못했다. 연재만화는 종종 황색저널리즘이라고도 불리우는 선정적 저널리즘과 함께 탄생하였다. 즉 최초의 연재만화인 「노란꼬마」로부터 그러한 용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1880년대에 들어와서 많은 미국 신문들이 대중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요판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월드지와 저널지는 독자확보 쟁탈전을 벌였으며 그 결과 리차드 아우트콜드가 월드지에 「노란꼬마」를 선보였던 것이다. 연재만화란 용어는 인물의 계속적인 출현, 그리고 그 그림 속의 대화나 본문이 곁들인 연속적인 장면들로 꾸려지는 어떤 하나의 이야기가 있을 경우 그것에 적용된다. 그러한 정의에 입각한다면 노란 꼬마가 분명히 첫번째 연재만화가 된다. 그러나 데이비드 쿤즈레는 ①분리된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②이미지가 본문보다 우세해야 한다. ③연재만화가 등장하기 위해 이용되고 본래부터 지향하고 있는 매체는 재생산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④그 연속된 장면들은 도덕적이며 또한 시의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윌리암 호가드의 작품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화가인 로돌프 튀퍼의 작품도 이에 포함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루트콜트가 1896년 그림과 대사를 함께 결합시킨 이후에야 그 양식은 창의성과 대중성 양자 모두에 있어서 급격히 발전하였던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초기의 연재만화들이 사실적인 연재만화나 공포물 연재만화의 표현법과 같은 폭력성향을 갖지는 아니했다. 초기의 연재만화는 주로 유머류였으며 슬램스틱과 혼전난투의 부수적인 사건에 크게 의존하였다. 1905년 시카고 트리뷴지는 저질 폭력만화를 비판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게 가미된 파이닝거의 「킨-데르-키즈」를 일요판에 연재하였다. 그러나 `다음 호에 계속'식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파이닝거는 다른 만화가들이 연속적인 이야기를 꾸며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았으며 그의 뛰어난 그림은 만화 분야에서 만화예술이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주었다. 그 뒤 일간신문의 연재만화가 탄생한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스포츠면 만화에서부터였다. 미국의 연재만화작가들이 풍부한 미술품, 저작물들을 만들어 내면서 점점 그것의 구입은 손쉬워졌으며 1980년에는 4개의 연재만화가 각기 1000개 이사의 신문에 공동배포 되었다. 그것은 딘영과 짐레이몬드 공동창작의「블론디」, 찰스 엠 슐츠의「피너츠」, 모트 워커의「비틀베일리」그리고 딕 부라운의「공포의 하가」가 바로 그것이다. 초기의 연재만화들은 유머만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그러나 1929년 로이크레인이 모험을 즐기는 군인인 이지선장을 연재만화인「빨래대야」에 선보임으로써 이후「딕트레이시」,「타잔」등과 같은 모험연재만화가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험 이야기는 만화책이 유행되면서 비로소 실질적인 제 길을 찾았다. 미국의 1세대 만화책들은 유머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나 1937년에는 형사연재만화라는 단일 주인공을 대상으로 한 첫번째 모험만화책이 출판되었다. 그 이후 초능력 주인공의 이야기인「슈퍼맨」,「배트맨」,「아메리카 선장」,「마블대장」등이 등장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만화책 산업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로 몇몇 발행인들은 공포와 폭력을 삽입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동안 이러한 무시무시한 괴기물들에 대해 만화규약위원회가 조직되어 만화책의 내용에 대한 기준을 책정하게 되었다. 이 위원회의 조치는 만화책 기업들을 살릴 수는 있었지만 경쟁 시각매체인 텔레비전과 영화 등이 그 주제와 처리 면에 있어서 더욱 자유분방 해져 가는 상황에서 만화에 대한 구독률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문제를 갖고있는 초능력 주인공「스파이더맨」,「헐크」,「실버 서퍼」를 선보임으로써 만화책 분야에 새로운 분위기를 일으켰다. 1960년대에는 만화규약위원회에 반발한 아주 색다른 반응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코믹스(COMIX)라고 명명된 지하 만화책의 성장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감정에 부추겨지고, 늘어나는 마약 문화의 반권위주의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코믹스는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뽐내며 성폭력 및 마약에 대해 삽화적 표현을 꾀하였다. 코믹스의 급증은 창조적 힘의 분출을 낳았고 새로운 유명만화가들을 배출하였으나 1970년대의 중반에 이르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최근 연재만화를 보면 유머적인 성향은 더욱 늘어나고 모험적인 성향은 더욱 줄어드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머 연재만화도 더욱 간결해지고 있어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보다는 한 줄 이내의 짧은 대사의 이루어진 재담으로 흐르고 있다. 짐 데이비스의「가필드」가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애완동물에 관한 연재만화가 증가하고 있으며 사회의 동향 또한 반영되고 있다. 즉 직업여성에 대한 이야기나 사무적 근로자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사무실을 무대로 한 연재만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연재만화 역시 임무를 가진 독자를 끌어들어야만 하는 만화이다. 변모하는 일간신문 그리고 변모하는 사회구조는 전통적인 연재만화에게 어려움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래된 만화인물은 급변하는 세계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항구성을 가지며 변모하는 사회양식을 반영해 주는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 역시 존재한다.   4. 나오며 만화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독자의 만화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의 만화시장은 아직도 어른들에게 만화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힘들다. 지하철 안에서 거리낌없이 만화를 볼 수 있는 어른이 있을 때 만화는 비로소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만화 애호세대가 20대 30대가 되더라도 학년에 따라 교과서가 바뀌듯 자연스럽게 그 나이에 맞는 만화를 접할 수 있도록 독자층을 넓혀 가야한다. 만화에 대한 지지도와 자체판단력을 가진 독자의 양성이 성자의 첫걸음이다. 대중을 모르는 만화는 작가는 사장될 수 밖에 없다. MBC에서 제작 방영된「머털도사」기법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탄탄한 스토리, 편집력만으로도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만화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매우 중요하지만 만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개성이다. 개성있는 캐릭터, 개성있는 소재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요소 즉 유머, 풍부한 상상력, 숨쉴 틈없는 액션, 기막힌 반전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쥬라기 공원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우리나라 1년 자동차 생산량을 넘는다는 분석은 영상산업의 무한한 가능을 지적해 준다. 만화 또한 일석 무한조의 산업으로 그것이 파생시키는 산업적 이득이 엄청나다는 것을 우리는 적지 않게 실감한다. 극장개봉과 TV방영뿐만 아니라 문구, 완구, 팬시, 패션 마스코트 등의 상품화 브랜드에서부터 음반 비디오, 광디스크, 컴퓨터 게임, CD-ROM 등의 첨단 복합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분야가 거의 무한하다. 우리도 만화가 창출하는 부가가치 품목들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며 그 선결 조건이 국내 자체 제작의 창작 만화영화인 것이다.

만화의 역사1

자유로운 과장법과 생략법을 써서 단순·경묘(輕妙) 그리고 암시적인 특징을 노리는 것이 순수회화와 구별되는 점이다.

회화 또는 풍자화를 캐리커처(caricature)라고 하는데, 이는 이탈리아어의 caricare(과장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 현재는 영국·프랑스 등 극히 일부 유럽지역에서 시사만화를 가리켜 쓰는 말이며, 일반적으로는 과장된 인물화를 캐리커처라 한다.

그리고 시사만화나 한 장면만화는 카툰(cartoon)이라고 하며, 4컷 이상이 연결되어 스토리가 이루어지는 만화는 코믹스(comics) 또는 코믹 스트립스(comic strips)라고 하는데 이것은 주로 미국에서 쓰는 말이며, 유럽에서는 보통 카툰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중국 등지에서는 만화라고 하며, 소설처럼 긴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만화는 극화(劇畵)라고도 한다.

1. 기원
만화와 회화를 내용성 ·표현양식 등으로 구별하는데 어느 방법을 막론하고 만화와 회화의 역사적 기원은 동일시된다. 제4성층 후기 지구 전체가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을 때, 인간은 이미 동굴 속에서 벽화를 그렸고, 사슴의 뼈나 뿔에다 칼로 조각하였다. 석기시대를 거쳐 이집트의 신문화시대로 들어서면서, 초기 피라미드 내부와 후기 룩소르신전 등에 그려진 새와 동물들의 의인화된 그림들은 다분히 만화의 기본요소인 희화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 후 유럽의 르네상스문화의 개화에 따라 희화적인 작품이 많은 목판화나 동판화로 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독일의 A.뒤러가 ‘죽음과 악마’를 소재로 하여 그린 작품이나 보슈의 환상적인 유화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요괴들과 악마들은 만화의 기본요소인 과장법으로 그려진 것들이다. 바로크시대 고야의 《로스 카프리치오스》 등 악마적인 동판화 시리즈는 희화성이 강한 회화라기보다는 회화적인 만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18세기 말경의 순수문화시대에 들어서면서는 개인사상의 존중과 자유, 독창성이 강한 표현양식이 빛을 보기 시작하자 회화 역시 다양성을 띠기 시작했고 19세기의 인쇄술 발달로 현대만화로 발전되었다.

2. 분류
만화는 내용과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시사만화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시사에 맞는 그때그때의 상황을 풍자한 만화이다. 유머만화는 가정물 ·아동물 ·동물만화 등 시사성을 초월하며 예술성을 지향하는 만화이다. 극화는 소설처럼 긴 스토리를 한 장면 한 장면 순서대로 변화시켜 엮어나가는 만화이다. 표현은 유머만화적일 수도 있고, 사실적인 삽화적일 수도 있고 비현실적 ·초과학적인 과장법을 쓸 경우도 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단편만화이다. 월트 디즈니프로덕션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3. 역사


<오노에 도미에- 삼등열차>

현대회화의 시발점을 19세기 후반으로 본다면 현대만화의 시발점도 이와 거의 같은 때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 당시에는 만화를 화가의 여기(餘技)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프랑스 사실주의의 대가이며, 회화사에 길이 남을 《크리스팽과 스카팽》 《삼등열차》 등의 명작을 남긴 오노레 도미에는 신문에 당시 국회의원들이 의회에서 한 발언장면, 법원에서의 재판광경 등을 만화로 그렸을 뿐 아니라, 당시의 프랑스왕 루이 필립을 서양배(꼭지쪽은 가늘고 밑쪽이 넓은) 모양으로 그려서 신문에 실어, 6개월 간의 금고형을 받는 필화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데생의 천재로 알려졌던 H.T.로트레크의 유화작품은 인상파미술관 속의 커다란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가이나 역시 신문에 많은 만화를 그렸다.



한국의 경우, 1930년대에 동양화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이 잡지에 단편만화를 그렸고, 노수현(盧壽鉉)은 1924년대에 《조선일보》에 《멍텅구리》를 연재함으로써 신문만화의 새 기원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순수회화작품으로 만화를 앞지르는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대체로 만화가의 작품(본격 만화작품)으로 알려지기보다는 화가의 여기작품으로 알려졌다.

4. 한국
최초의 순수한 만화가는 김규택(金奎澤)이다. 그는 《신동아(新東亞)》 《별건곤(別乾坤)》 《조광(朝光)》지 등에 많은 단편만화와 만화 ·만문형식의 《억지춘향전》을 연재하여 세인의 눈을 끌었고 8 ·15광복 후에는 주간지 《새한민보》 표지에 시사만화를 연재하였다.

신문만화로는 1924년대에 노수현이 《조선일보》에 《멍텅구리》를 연재하였고 광복 후엔 김중현(金重鉉)이 때때로 잡지에 만화를 그리곤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어린이잡지 등에 소설삽화를 그리던 김용환(金龍煥) ·김의환(金義煥) 형제가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김용환은 《서울타임즈》에 《코주부》를, 김의환은 《어린이 나라》 등 어린이잡지에 많은 만화를 그렸다. 또 시인 김소운(金素雲)이 《만화행진》이라는 주간 만화신문을 발행하여 종래 만화란 어린이 전용의 것으로 여겨왔던 일반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곧 폐간되었고 김용환이 《만화뉴스》를 발간했는데 《연합신문》에 만화를 기고하던 김성환(金星煥)과 신동헌(申東憲)이 이에 참여하던 중 6 ·25전쟁이 일어났다. 피난지에서 박성환(朴聖煥)이 《만화신보》, 김용환이 《만화신문》, 김성환이 《만화승리》를 제작하는 등 주간 만화신문이 잠시 활기를 띠었다.







환도 후엔 김성환이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고바우영감》을 연재하고(80년도에 조선일보로 옮겨 연재하다 현재는 文化日報에 연재중), 곧 이어 안의섭(安義燮)이 《경향신문》에 《두꺼비》를 연재했다가, 《문화일보》에 연재했으며 정운경(鄭雲耕)의 《왈순아지매》가 《대한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며 백인수(白寅洙)의 《사회희평》이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것이 신문만화로선 장기간의 연재물이다. 신문 ·잡지엔 김일소(金一笑) ·김경언(金庚彦) ·길창덕(吉昌悳) ·박기정(朴基禎) ·임창(林創)이 그려온 한편, 오룡(吳龍)이 《조선일보》에 《야로씨》를, 윤영옥(尹暎玉)이 《서울신문》에 《까투리여사》를 연재했다.









환도 후의 아동만화계에는 만화잡지가 붐을 일으켜 이상호(李相昊) ·정한기(鄭漢基) ·박기준(朴基埈) ·김정파(金靜波) ·신동우(申東雨) ·김종래(金鍾來) ·박현석(朴賢錫) 등이 활약했으나, 얼마 후엔 잡지시대에서 대본소용 단행본시대로 접어들어 많은 조제품이 남발되어 사회문제화되기도 하였다. 또한 《소년세계》 《새벗》 《학원》 《학생계》 등에는 안의섭의 《두꺼비 A ·B곡》, 김성환의 《꺼꾸리군 ·장다리군》 《세모돌이 ·네모돌이》 《소케트군》 등이 연재되었다.

또 신동헌은 최초로 장편만화 《홍길동》을 제작상영함으로써 만화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호피와 차돌바위》로 이어졌으나 기업으로까지 성장하지는 못했다.


-고우영(高羽榮)《임꺽정》-

김종래의 극화 《도망자》 《암행어사》에 이어 고우영(高羽榮)은 극화 스타일로 꾸준히 《일간스포츠》지에 《임꺽정》 《일지매(一枝梅)》를 연재했고, 이두호의 《머털도사와 또매》 《장독대》,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 등은 무술극화를 정착시켰고, 박수동(朴水東)은 독특한 선으로 《고인돌》을 《선데이서울》 등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엄마찾아 3만리》의 김종래, 《라이파이》의 김산호의 단행본 시대를 거쳐서 각 일간지들은 어린이와 중학생 상대로 《소년조선일보》 《소년동아일보》 《소년한국일보》를 발행했는데 김박(金博) ·김세환(金世煥) ·김삼(金森) 등이 참여하였다. 《동아일보》에 이홍우(李泓雨)가 《나대로선생》을, 《일간스포츠》에 허어(許漁)가 《미스터 펀치》를 연재하였다.



어린이잡지에서는 김수정이 《아기공룡 둘리》로 명성을 얻었고 주간만화잡지와 스포츠신문에서는 이현세의 《까치》 시리즈와 《로보트 태권 V》의 김형배, 《변금련》의 배금택, 《악동이》의 이희재와 《각시탈》의 허영만, 《신손자병법》의 한희작,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가 유명하다. 단체로는 1958년 김용환 ·신동헌이 주도한 한국만화가협회와 김성환 ·안의섭이 주도한 현대만화가협회가 각각 만화가협회전과 문화단체와의 야구경기 등 행사를 많이 해왔으나, 5 ·16쿠데타 후에 와해되었고, 68년 아동만화가협회가 이상호를 회장으로 발족된 후, 77년 극화분야와 어린이신문 관계 만화가까지 망라하여 만화가협회로 개칭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겨레신문》이 발행되면서 박재동의 《한겨레그림판》과 《경향신문》의 김상택의 《시사 희평》이 유명하고 《한국일보》의 심민섭의 《심마니》도 유명하다.




만화의 분류별 역사

만화는 여기저기 보급되어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한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제 9의 예술이라는 만화의 또 다른 명칭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만화는 저급한 성질의 아이들만 보는 것으로 아니면 싸구려 환상을 담은 오락물 정도로 가볍게 보아 넘겨져 왔을 뿐이다. 그러나 만화의 역사는 인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역사적 고찰로써 대중적 포용력과 상업성 그리고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그 발전가능성에 비추어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화의 역사
(1)정치 만화
일반적으로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드를 서구 역사상 최초의 만화가로서 간주하고 있다. 호가드는 이탈리아인들이 소개한 개인적인 차원의 캐리커쳐를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유머를 그렸다. 그는 최초의 정치만화가인 동시에 그의 서술적 만화이야기는 현대 연재만화의 전조가 되었다. 그 외에도 토마스 로우랜드슨과 고야는 정치적 설득을 가진 만화양식을 보급하는 데 기여했으며 프랑스의 오노레 도미에는 만화를 미술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는데 투옥까지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의 사회적 악습에 대한 일반적인 풍자와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넓은 견지에서 보면 정치만화에 대한 체제와 힘은 도미에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식민지시대의 미국에서는 많은 반영 만화들이 익명의 작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그 중 한 사람이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종종 미국 최초의 정치만화가로 논의되고 있다. 미국 저널리즘 초창기에는 정치 만화가들이 크레용의 딱딱한 용모와 음침한 주색을 통한 표현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토마스 내스트이다.
토마스 내스트와 그의 삽화.


대도시에서 대형 신문들이 등장함에 따라 정치만화는 두 가지 양식으로 나누어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는 일간신문을 통한 시사만화로 그것은 복잡한 신문 신디케이트로 발전되었고 또 하나는 소규모의 잡지를 통한 표현이었다. 신문만화가에는 죤 넥커친, 로린 커버, 재이 딩 다링, 넬슨 하딩, 다니엘 피츠패트릭 등이 있었고 그들은 각기자신들의 시사만화로 한 개 또는 그 이상의 플리쳐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졌다. 정치잡지에서 일하는 시사만화가들은 신문에서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독자를 가졌으나 그들이 선보인 논점과 표현법은 후세의 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아트 영, 보드맨 루빈슨, 죤 슬론, 로버트 마이너 등은 크레용과 육중하고 딱딱한 용모의 사용, 도미에의 표현법 등을 사용했다. 2차 대전을 지나 197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의 정치 만화가들이 등장하였는데 패트 오리판트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때의 만화가들은 로널드 셜즈와 같은 현대 삽화가의 영향을 받아 소묘적이고 가는 선을 사용한 캐리커쳐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날이 넓은 도끼적인 공격보다는 가늘고 긴 쌍칼적인 재치를 통해서 자신들의 세상에 접근하고 있다. 유머에 대한 이러한 경향은 짐 베리의 한 칸 만평인 베리의 세계에서 두드러져 유머 만화가 신문의 사설면에 실릴 수 있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 미국의 급진적인 만화가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산 베트남 전쟁은 지하신문과 지하 연재만화에서 더욱 드러났다. 1980년대 이후의 정치만화는 사회의 여러 가지 경향들 이를테면 독자의 보다 강화된 시각적인 세련성, 더 많은 오락에 대한 요구 그리고 정치적 집단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을 반영하고 있다. 즉 유머에 대한 요구, 시사면에 대한 구독률을 높혀줄 시각적 구성에 대한 요구는 신문만화가의 새로운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현대의 신문만화는 정보를 알려 주고 설득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끌어 들어야만 한다.

(2)유머 만화
1840년대의 카툰이란 영어단어의 의미는 이탈리아어인 키르톤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대형미술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행해지는 기초적인 스케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의 만화는 정치적 논평과 유머적 성격 모두를 동시에 가졌다. 유머스러운 만화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논평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인간존재에 대한 완전하고 현세적인 세계를 떠맡게 된 것은 1860년대에 들어섰을 때이다. 유머 만화는 삽화적인 표현법을 사용하였고 그 표제는 짧고 여러 줄로 구성된 연극 대사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상황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1920년대에 와서 만화의 표제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종종 유머만화는 여전히 두 줄의 농담 대사로 구성된 삽화형식을 취했다. 그 이후 만화의 표현기법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더 다양하게 변모하였다. 1930년대의 만화가로는 제임스 터버와 찰스 아담스를 들 수 있다. 이들 만화가들은 각기 그들의 기법을 추종하는 많은 모방자를 낳았고 만화 유머의 새로운 길을 전개시켰다.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혀 설명을 붙이지 않은 상태로도 만화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대 유머만화는 미술 표현법을 통해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들의 현대 유머 감각을 가장 적절한 시각적 표현으로 구성 짓는 것이다.

(3)이야기 만화
정치만화와 유머만화 이후에 등장한 만화분야는 연재만화이다. 그것은 현재 뚜렷한 확장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연재만화가 처음 출현했을 때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중요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연재만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것은 미술의 영역으로부터 즉각적인 환영을 받지 못했다. 연재만화는 종종 황색저널리즘이라고도 불리우는 선정적 저널리즘과 함께 탄생하였다. 즉 최초의 연재만화인 「노란꼬마」로부터 그러한 용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1880년대에 들어와서 많은 미국 신문들이 대중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요판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월드지와 저널지는 독자확보 쟁탈전을 벌였으며 그 결과 리차드 아우트콜드가 월드지에 「노란꼬마」를 선보였던 것이다. 연재만화란 용어는 인물의 계속적인 출현, 그리고 그 그림 속의 대화나 본문이 곁들인 연속적인 장면들로 꾸려지는 어떤 하나의 이야기가 있을 경우 그것에 적용된다. 그러한 정의에 입각한다면 노란 꼬마가 분명히 첫번째 연재만화가 된다. 그러나 데이비드 쿤즈레는 ①분리된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②이미지가 본문보다 우세해야 한다. ③연재만화가 등장하기 위해 이용되고 본래부터 지향하고 있는 매체는 재생산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④그 연속된 장면들은 도덕적이며 또한 시의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윌리암 호가드의 작품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화가인 로돌프 튀퍼의 작품도 이에 포함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루트콜트가 1896년 그림과 대사를 함께 결합시킨 이후에야 그 양식은 창의성과 대중성 양자 모두에 있어서 급격히 발전하였던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초기의 연재만화들이 사실적인 연재만화나 공포물 연재만화의 표현법과 같은 폭력성향을 갖지는 아니했다. 초기의 연재만화는 주로 유머류였으며 슬램스틱과 혼전난투의 부수적인 사건에 크게 의존하였다. 1905년 시카고 트리뷴지는 저질 폭력만화를 비판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게 가미된 파이닝거의 「킨-데르-키즈」를 일요판에 연재하였다. 그러나 `다음 호에 계속'식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파이닝거는 다른 만화가들이 연속적인 이야기를 꾸며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았으며 그의 뛰어난 그림은 만화 분야에서 만화예술이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주었다. 그 뒤 일간신문의 연재만화가 탄생한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스포츠면 만화에서부터였다. 미국의 연재만화작가들이 풍부한 미술품, 저작물들을 만들어 내면서 점점 그것의 구입은 손쉬워졌으며 1980년에는 4개의 연재만화가 각기 1000개 이사의 신문에 공동배포 되었다. 그것은 딘영과 짐레이몬드 공동창작의「블론디」, 찰스 엠 슐츠의「피너츠」, 모트 워커의「비틀베일리」그리고 딕 부라운의「공포의 하가」가 바로 그것이다. 초기의 연재만화들은 유머만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그러나 1929년 로이크레인이 모험을 즐기는 군인인 이지선장을 연재만화인「빨래대야」에 선보임으로써 이후「딕트레이시」,「타잔」등과 같은 모험연재만화가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험 이야기는 만화책이 유행되면서 비로소 실질적인 제 길을 찾았다. 미국의 1세대 만화책들은 유머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나 1937년에는 형사연재만화라는 단일 주인공을 대상으로 한 첫번째 모험만화책이 출판되었다. 그 이후 초능력 주인공의 이야기인「슈퍼맨」,「배트맨」,「아메리카 선장」,「마블대장」등이 등장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만화책 산업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로 몇몇 발행인들은 공포와 폭력을 삽입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동안 이러한 무시무시한 괴기물들에 대해 만화규약위원회가 조직되어 만화책의 내용에 대한 기준을 책정하게 되었다. 이 위원회의 조치는 만화책 기업들을 살릴 수는 있었지만 경쟁 시각매체인 텔레비전과 영화 등이 그 주제와 처리 면에 있어서 더욱 자유분방 해져 가는 상황에서 만화에 대한 구독률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문제를 갖고있는 초능력 주인공「스파이더맨」,「헐크」,「실버 서퍼」를 선보임으로써 만화책 분야에 새로운 분위기를 일으켰다. 1960년대에는 만화규약위원회에 반발한 아주 색다른 반응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코믹스(COMIX)라고 명명된 지하 만화책의 성장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감정에 부추겨지고, 늘어나는 마약 문화의 반권위주의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코믹스는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뽐내며 성폭력 및 마약에 대해 삽화적 표현을 꾀하였다. 코믹스의 급증은 창조적 힘의 분출을 낳았고 새로운 유명만화가들을 배출하였으나 1970년대의 중반에 이르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최근 연재만화를 보면 유머적인 성향은 더욱 늘어나고 모험적인 성향은 더욱 줄어드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머 연재만화도 더욱 간결해지고 있어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보다는 한 줄 이내의 짧은 대사의 이루어진 재담으로 흐르고 있다. 짐 데이비스의「가필드」가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애완동물에 관한 연재만화가 증가하고 있으며 사회의 동향 또한 반영되고 있다. 즉 직업여성에 대한 이야기나 사무적 근로자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사무실을 무대로 한 연재만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연재만화 역시 임무를 가진 독자를 끌어들어야만 하는 만화이다. 변모하는 일간신문 그리고 변모하는 사회구조는 전통적인 연재만화에게 어려움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래된 만화인물은 급변하는 세계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항구성을 가지며 변모하는 사회양식을 반영해 주는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 역시 존재한다.
 

4. 나오며
만화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독자의 만화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의 만화시장은 아직도 어른들에게 만화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힘들다. 지하철 안에서 거리낌없이 만화를 볼 수 있는 어른이 있을 때 만화는 비로소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만화 애호세대가 20대 30대가 되더라도 학년에 따라 교과서가 바뀌듯 자연스럽게 그 나이에 맞는 만화를 접할 수 있도록 독자층을 넓혀 가야한다. 만화에 대한 지지도와 자체판단력을 가진 독자의 양성이 성자의 첫걸음이다. 대중을 모르는 만화는 작가는 사장될 수 밖에 없다. MBC에서 제작 방영된「머털도사」기법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탄탄한 스토리, 편집력만으로도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만화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매우 중요하지만 만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개성이다. 개성있는 캐릭터, 개성있는 소재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요소 즉 유머, 풍부한 상상력, 숨쉴 틈없는 액션, 기막힌 반전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쥬라기 공원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우리나라 1년 자동차 생산량을 넘는다는 분석은 영상산업의 무한한 가능을 지적해 준다. 만화 또한 일석 무한조의 산업으로 그것이 파생시키는 산업적 이득이 엄청나다는 것을 우리는 적지 않게 실감한다. 극장개봉과 TV방영뿐만 아니라 문구, 완구, 팬시, 패션 마스코트 등의 상품화 브랜드에서부터 음반 비디오, 광디스크, 컴퓨터 게임, CD-ROM 등의 첨단 복합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분야가 거의 무한하다. 우리도 만화가 창출하는 부가가치 품목들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며 그 선결 조건이 국내 자체 제작의 창작 만화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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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2 세계최초의 만화는 무엇일까요?
1 만화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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